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시절이 있었다. 1962년 대학 리그가 출범한 이래 1988년까지 우리 협회에서 적용하는 규칙은 주로 말로 전해오는 구전 룰로 경기를 하였다. 지나간 NCAA 룰, TV에서 보던 NFL 룰 등이 혼합되었지만 큰 탈 없이 대회는 운영되었다. 간혹 누가 새로 나온 룰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경기장에서는 옥신각신 소동이 일어나가도 했지만 워낙 오래전부터 믿어온 규칙을 잘 따랐다. 선배 말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처럼 우리 규칙도 그렇게 적용되었다. 1974년에는 대한 체육회에서, 1981년에는 중앙 협회에서 미식축구 규칙 책자를 발간 하기도 했지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제2회 강습회에 같이 참가했던 회원들과 가족들(1989년 8월 13일)
길고도 뜨거웠던 하루 1988년 8월 12일 경북대학교 구룡포 수련원 세미나 실에서는 하루 종일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 1회 심판 및 규칙 강습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심판 매카니즘은 뒷전이었고 먼저 미식축구 규칙에 관한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미식축구계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은 모두 모였다. 원로 주원복 선생님, 성균관대 손자섭선배님, 황교일회장님, 강성봉, 최현두 협회 부회장, 김한수 전임 부산협회장, 박영립 전임 서울협회장, 이전제 서울협회장, 윤석후 전무, 강인호와 차정한 감독 등 모두 모였다. 건물 밖의 온도는 섭씨 40도 가까이 달아 올라있었다. 실내도 선풍기는 돌았지만 만만치 않았다. 물론 요즘 흔한 에어콘은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다. 더구나 규칙에 관한 논쟁은 열기를 더욱더 높여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질문과 질문에 대한 반론, 그리고 반론에 대한 또 다른 반론으로 이어지더니 더 나아가 언성을 높이다가 화까지 내는 사람도 있었다. "터치백과 세이프티"는 물론이고 "펌블과 머프", "수비선수가 확보한 볼을 들고 뛸 수가 있는지", "오프사이드와 부정한 모션" 등 모두 말로 수 없는 처음 듣는 용어와 정의, 그리고 판정 등은 참가자들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기존에 믿고 있었던 것이 완전히 뒤집어 지는 순간들이었다. 더구나 벌칙 적용으로 가면 더 어려워 졌다. 다운의 반복, 반칙지점, 프리비어스 지점, 패스 인터피어런스 등은 더욱더 혼란을 가중 시켰다.
1988년 심판 강습회에서 제 1호 심판 자격증을 부여 받은 주원복 선생님/이종희 한양대 OB 제공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논쟁에 대한 "신의 한 수" 약 100 미터만 내려가면 시원한 바닷가와 모래사장이 있었고 바위 틈에는 많은 조개와 작살로 잡을 수 있는 놀래미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점심도 먹는 등 마는 등 오후에도 또 목소리들을 높였다. 끝이 없는 난상 토론의 연속이었다. 본래 프로그램은 빨리 끝내고 바닷가로 가서 물놀이와 술 한잔을 하면서 친목도 다지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안았다. 예로부터 "염불보다 젯밥"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 만은 그렇지 안았다. 결론이 나지 않는 조항은 "투표로 결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규칙은 규칙이다 진리는 투표로 결정 할 수 없다"는 필자의 주장에 결국은 당시 황교일 협회장이 "지금부터 박경규 교수의 결정이 대법원 판정이다"이라는 말로 필자에게 힘을 실어 주셨다. 바로 신의 한 수였다. 참 고마웠다. 이 말씀으로 "끝 없던 규칙의 논쟁"에서 해방이 되었다.
모두들 늦은 오후에야 바닷가로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소주와 회로 거나 하게 취한 후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서로의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누구의 제안인지 팔 씨름 대회가 열렸다. 왕년의 미들급 참피온 권투선수 조원민 부산대 체육과 교수(서울대 OB 66학번), 팔 씨름은 한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다는 박영립 부회장, 그리고 경성대의 호프 이창화의 대결은 경북대 수련원을 들썩이게 하였다. 다음날(13일)에 열린 심판 매카니즘이 윤석후 전무의 지도로 진행되었지만 전날 너무 진을 빼서 그런지 대충대충 하였다. 그리고 심판 자격증이 수여 되었다. 자격증 1번이 주원복 선생님이었고 아마 2번이 손자섭 선배님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7번이었다. 당시 심판 위원장은 최현두 부회장이었다.
1988년 여름 강습을 위하여 아직 제본이 안 되었던 롤북 원고
제 2회 강습회에서 사용된 심판 보는 법 책자
1988년도 새로운 규칙 집으로 심판 및 규칙 강습 세미나를 준비 심판 및 규칙 강습회는 대구-경북협회가 주관을 하고 중앙협회가 주최하는 행사였다. 본래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대구 협회가 독자적으로 심판 및 규칙 강습회를 열 예정으로 추진해왔었다. 그리고 "회장단회의"에 보고하자 "그러지 말고 협회 주최로 합시다. 비용은 중앙회에서 지불하겠습니다"로 하게 되어 대구협회의 주관으로 추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제 1회 심판 및 규칙 강습회가 1988년 8월에 열리게 된 것 이다. 이 행사를 위해 필자를 비롯하여 서울 협회장 이전제 교수, 중앙회 윤석후 전무 등 3명이 7월 한 달을 꼬박 보내며 대한미식축구협회 규칙을 정리하였다. 기본은 NCAA룰과 일본협회 룰을 번역한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두 분의 번역 본을 모아 다시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를 하였는데 이 해 여름방학은 이 자료를 정리하고 준비하면서 무더운 여름을 꼬박 지냈다. 또한 필자는 이 강습회를 위해 - 새로운 룰, 잘 모르고 있는 룰, 틀리기 쉬운 룰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요약하여 정리하였고 이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감수는 우리 3명 이외에 차정환 감독도 참가하였다. 특히 차 감독은 필자가 강습회 용으로 요약 정리를 할 때 필자와 많은 대회를 나누면서 현재 우리 심판 및 규칙의 문제점들을 이야기 하며 도움을 주었다. 강습회를 주관했던 필자 생각으로는 반나절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 했지만 잘못 판단이었다.
제 2회 강습회 후에 기념 사진 앞줄에 강인호 강성봉 뒷줄에 필자 손자섭 윤석후
1989년 제2회 강습회, 가족들도 동반 제 1회 강습회가 끝난 후 때 헤어질 때 모두가 많은 아쉬움을 남겼었다. 특히 규칙 논쟁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놀지 못해 더욱더 아쉬워했다. 그래서 인지 제 2회 심판 강습회(1989년)에는 약 70여명이 모였다. 대부분 가족들을 동반했다.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경북대 수련원에서 열렸는데 우리나라에서 미식축구를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았다. 마치 전당대회와 같은 분위기였다.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은 숙소 밖에 텐트를 치고 놀면서 금방 다른 아이들과 친해졌다. 부인들은 서로 모여 앉아 미식축구에 푹 빠진 남편을 흉 보기에 밤새는 줄 몰랐고, 남자들은 왕년에 미식축구에 얽힌 비화들을 술 한잔을 걸치면서 떠드느라 밤을 지새웠다. 둘째 날(13일) 오전에 심판 강습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지난해에 모두 마무리가 되어 빨리 끝났다. 오후에는 경북대 선수들이 빌린 해병대 상륙 보트로 아이들과 부인들은 물놀이를 하였고, 강성봉 부회장은 윈드설핀을 가져와 윈드설핀 강습회를 별도로 열었다. 또한 술 좋아하는 최현두 부회장은 아예 작살을 가져와서 놀래미 등 물고기를 잡아 즉석 회를 떠서 우리들에게 서비스를 하였다. 물론 바닷가 바위 섬에 앉아 마시는 소주의 맛은 일품이었다. 밤에는 특별 초청한 레크레이션 강사의 지도로 포크댄스와 퀴즈로 여흥을 베풀어서 우리 미식축구인들은 부인들과 아이들의 인기 만점의 아빠들이 되었다. 정말 미식축구가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즐거운 여름 밤이었다. 14일 아침 식사 후에 아쉬운 미련을 남기고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다시 떠나니 무척 허전해진다. 마치 봄 날에 비가 온 후에 떨어지는 벗 꽃을 보는 기분이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 밤도 그날 밤부터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 귀뚜라미 울음이 더 크게 들렸다." 당시 모두를 보내고 경북대 선수들과 마지막 여름 훈련을 위해 구룡포에 남아있던 필자가 일기장에 갈겨쓴 글귀다.
제 2회 기간 중 해병대 상륙 보트로 즐거웠던 물놀이
윈드설핀 강습회 설핀 위에서 즐거워하는 고 최현두 부회장, 왼쪽이 필자 그리고 뒤가 강성봉
제 2회 심판 강습회 기간 중 여흥 프로그램/1989년
대구협회 배영호 전무와 김덕수 이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1990년(3회)과 1991년(4회)에도 심판 및 규칙 강습회는 대구협회 주관으로 같은 장소에서 열렸고 무척 재미있게 보냈다. 어느 해에는 한양대 OB들이 대거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규칙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지금의 규칙으로 이어져 왔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은 법인 것 같다. 사실 이러한 행사의 뒤에는 대구협회 배영호 전무이사와 김덕수 이사의(고려대 OB, 73학번) 헌신적인 협조가 있었다. 참가자 및 가족들의 식사부터 물놀이 계획까지 두 분이 콤비를 맞추어 완벽하게 준비했다. 이 자리를 빌어 33년 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또한 황교일 회장님의 통 크신 지원과 협조에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바쁘고 고된 여름 훈련(합숙) 일정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아빠들의 심판 강습 시간에 참가 가족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고무 보트 태워주기, 물놀이 놀아 주기를 했던 당시 경북대 미식축구 선수들에게도 특별히 감사를 보낸다. 당시 우리 협회 미식축구인들의 풋볼에 대한 뜨거웠던 열정이 새삼 생각이 나는 것은 시절이 이래서 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필자는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1989년 제 2회 심판 강습 회에서 출판된 우리나라 룰-북
인용자료 박경규: 택클을 돌파하라 "대구경북 미식축구 20년사" 1998년 대일 출판사 박경규: 개인소장 기록물 이종희: 개인소장 주원복 선생님 자료
역사 편집 감수: 노인환 전 사회인연맹 회장/김윤정 서울대 OB 역사 편집: 박경규 경북대 미식축구부 감독 명예교수 일시: 2021년 5월 7일
